09 January 2015

신경숙, «외딴 방»

27. 작별은 상대방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. 그리고 새삼 깨닫게 한다. 저이가 저런 모양새의 눈을 갖고 있었던가, 하고. 

166. 뭘 주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어서 내 책상 위에서 빼가지고 온 거야. 너, 옛날부터 책 읽는 거 좋아했잖아.

194. 조용조용한 발걸음들이 라일락나무를 스쳐간다. 

198. 아버진 칫솔질을 하시는 도중에 험험, 헛기침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가 이를 닦다가 험험, 하고 있는 것이었어요. 순간 칫솔질을 멈추었죠. 내가 낸 소리라고 생각을 못하고 아버지를 찾았습니다. 뒤늦게야 아, 참, 했습니다. 아, 참, 아버진 돌아가셨지. 다시 칫솔질을 하는데 기분이 묘하더군요.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. 부재의 느낌은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오는 것 같아요. 특히 죽음으로 인한 부재는 처음엔 실감이 안 나죠. 점차 일상 속에서 그 사람이 없다, 다시 만날 수 없다, 라는 걸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. [...] 그런 건 역사 속에서 제외되죠. 연대 속에서도요.

209.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.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,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,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, 살아가기 위해서. 

300. 해살스럽게 웃는 놈은 영락없는 비눗방울이었다.

306. 적어도 여러분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을 귀히 여겨 권리를 찾아가기를 바랐습니다. 노조지부장, 그는 우리들의 침묵이 안타깝다. 권리를 주장할 줄 모르는 우리들. 낮은 임금이나 낮은 수당에 대해 투쟁하기를 겁내하는 우리들. 그보다는 잔업이나 특근이 없어져서 수당을 못 받게 될까봐 그것이 걱정인 우리들. 우리는 스스로를 귀히 여길 줄은 모른다. 우리는 그의 말처럼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우리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. 

411. 그 집, 재래식 부엌의 아궁이 턱이나 그릇들이 엎어져 있는 살강 앞이, 엄마의 가슴속에 불어닥친 슬픔을 견뎌내는 유일한 장소였다. 부엌의 정령이 엄마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는 듯 엄마는 그 장소에서 다시 용기를 내곤 했다. 기쁠 때나 가슴이 아플 때나 떠나보낼 때나 돌아왔을 때나 엄마는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고 가족들을 상에 둘러앉게 하고 음식이 담긴 식기를 떠나야 할 사람이나 돌아온 사람 앞으로 밀어놓는다. 끊임없이 더 먹어라, 이것도 좀 먹어봐라, 식기 전에 먹어라, 저것도 먹거라.




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. 어깨너머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버스 창 저편에 희재 언니의 그 사람이 정류장에 홀로 가로수에 등 기대고 서 있는 모습을 찍고, 특별한 사운드트랙 없이 밤중에 변소가 없어지고 쓸모없어진 우물을 들여다보다 회상하는 모습을 가만히 비추고, 두번째 섬에 가서 바라봤던 바다를 바라보고, 비눗방울인 조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. 안향숙이 다녀와서 속삭일 때 딴짓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시선을 두었을 곳을 막연하게 봐보고, 카메라가 눈을 감자 십몇년 후 혼자 어느 아파트에서 티비로 보았을 끔찍한 그때 사진들을 덩그러니 보고 있는 그녀가 보여지는. 창과 이야기할 때 흘깃흘깃 보았을 그의 옆모습과, 창이 그녀를 볼 때 일부러 바라봤을 앞의 놓여진 정읍의 자연. 어쩌면 무슨 배우인지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힐끗힐끗 옆에 앉아 이야기하며 봤을 모습, 푸른 점 밖에는 찍히지 않을, 언뜻 보면 내가 아는 누구와도 닮았을 그런 인물들. 가겟집 아저씨도, 헤겔을 읽던 미서도, 왼손잡이 안향숙도, 매일 한 시간씩 늦던 하계숙도, 가슴 아픈 희재 언니도, 다들 대학 가면 왜들 저러는 것일까 했던 셋째 오빠도. 엄마가 가져와서 옥상에서 키워졌던 닭까지도 빼먹지 않고 나오는 영화였으면 좋겠다. 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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